중어중문학과 소개

DEPARTMENT OF CHINESE LANGUAGE & LITERATURE
SEOUL NATIONAL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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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과소개 및 연혁

중어중문학과는 체계적인 현대중국어 및 고대중국어 능력을 갖추어 중국의 언어와 문학을 폭넓게 연구하고 동양 문화를 계승, 발전시켜 나갈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찍이 1950년대부터 중국의 언어와 문학에 관한 커리큘럼을 시행하여 왔고, 고전문학과 현대문학, 중국어학의 전문 분야에 집중을 해왔다. 2000년대 들어서는 장기발전 구상을 통해 교육과 연구의 목표를 중국의 문화적 현상과 의미를 관찰하는 것까지 확대해왔다. 문화적 현상과 의미를 관찰한다는 것은 문학 및 언어학을 문화학과 접목하여 두 분야 간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며, 이러한 쌍방향 소통을 통해서 학생들로 하여금 중국에 관한 보다 포괄적인 지식과 이해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중어중문학과의 주된 전공분야는 크게 중국문학과 중국 언어학의 두 분야로 나누어진다. 문학분야는 시, 소설, 산문, 희곡, 사곡, 현대 문학 등으로 세분되며, 언어학 분야에는 문법, 음운론, 문자학, 방언학, 중국어 교육 등이 포함된다. 그 밖에 중국 문화 영역으로 교양과정에 <중국어권의 사회와 문화>와 <중국인의 언어와 문화>를 개설함으로써 학생들이 중국의 사회상과 문화 현상을 편안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거나 중국인의 사유 방식과 중국 문화의 특징을 언어적 현상과 연결시켜 중국어에 대한 학생들의 심층적인 이해를 도모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영어 강좌인 <중국 전통문화의 의미와 현대중국>를 개설하여 구미 학자의 시각에서 중국의 전통문화와 현대 사회의 제 현상이 지니는 의미를 접하여 중국 문화에 대해 포 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중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기회의 나라이자, 우리와 같은 문명권에 속해 있으면서 수 천 년에 걸쳐 밀접한 문화 교류를 이어 온 이웃이기도 하다. 중국에 대한 이해는 오늘과 내일의 국가의 성패를 좌우할 관건이 되었으며, 중어중문학과의 졸업생들은 세계 최고의 역사와 규모를 가진 중국의 문학, 언어, 문화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학계와 경제계, 언론계 등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인재로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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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926년부터 현재까지의 서운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연혁입니다.
서울대 개교 이전
중어중문학과의 역사는 근대적 고등교육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가 창설되던 192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 ‘지나문학과支那文學科’라는 이름으로 개설된 이래 1945년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국인 졸업생은 겨우 아홉 명이었고, 그중에 학계나 교육계에 종사한 이는 다섯에 지나지 않았다. 학과의 역사는 오래되었지만 이때까지 한국인 인재는 매우 적게 배출되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근대적 고등교육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중국문학과 한국문학을 엄격하게 구분하거나 중국문학을 외국문학으로 여기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는 과거에 우리 문화가 한자문화권 안에서 성장해 온 데다 문화와 학술의 기록이 대부분 한자에 의존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근대문학이 시작되고 우리의 글로 문학작품을 창작하게 되어서야 비로소 중국문학을 외국문학으로 인식하게 되었지만, 그럼에도 해방 이전까지는 외국문학으로서 중국문학에 대한 연구성과는 지극히 미미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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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946년부터 현재까지의 서운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연혁입니다.
서울대 개교 이후
우리나라에서 중국어문학이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시작한 것은 서울대학교의 개교 이후부터라고 할 수 있다.
1946년 서울대학교가 개교했을 때, 중어중문학과는 문리과대학 문학부에 소속되어 동숭동 캠퍼스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해방 직후 중문과에 처음으로 경성제국대학 출신의 이명선(李明善) 교수가 부임했다. 뒤이어 베이징(北京) 유학생 출신으로 당시 동아일보 문화부에 재직하고 있던 정래동 (丁來東) 교수가 초빙되어 왔고, 다음으로 중국에 오래 거주했으며 루쉰(魯迅)과도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서지학자 김구경(金九經) 교수가 부임했다.
이 시기에 차상원(車相轅) 교수는 사범대학 전임으로 있으면서 본 학과에 강의를 나왔고, 그 밖에 시간강사로 변영만(卞榮晩), 권오돈(權五惇), 이상은(李相殷), 민태식(閔泰植), 성낙훈(成樂熏) 등이 있었다.
이렇게 해서 서울대 중어중문학과는 우리나라 중국어문학 연구의 초석을 다질 수 있는 교수진을 갖추게 되었다. 교수진이 갖춰졌다고는 하나 해방 후의 사회 혼란으로 대학 내의 연구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아 교육이나 연구 성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교수와 학생들은 새로운 학풍을 세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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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950년부터 현재까지의 서운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연혁입니다.
한국전쟁과 타이완 교류시기
1950년 한국전쟁의 불길이 한반도를 휩쓸면서 중어중문학과도 큰 시련을 맞았다. 대학은 폐쇄되었고 이듬해에는 피난지인 부산에서 학교 문을 다시 열었지만 교수들은 모두 흩어지고 차상원 교수 한 분만이 중문과를 지켰다.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되어 서울로 돌아오고 나서 1954년에는 차주환 (車柱環) 교수가, 1955년에는 장기근(張基槿) 교수가 전임으로 부임하였고, 이어 김정록(金正錄) 대우교수가 부임하여 교수진이 재정비되었다.
교과목도 다양해져서 차상원 교수가 문학비평과 희곡을, 차주환 교수는 선진(先秦)문학과 詩, 詞를,  장기근 교수는 소설과 현대문학을, 김정록 교수는 현대문학을 강의했다. 이 시기의 강사로는 최창규(崔昌圭), 조용욱(趙容郁), 박노태(朴魯胎), 이원식(李元植), 장심현(張深鉉) 등이 있었다. 김정록 교수는 1961년 문리과대학에 미학과가 개설되면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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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에 중국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우리나라와 중국과의 교류가 완전히 단절되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했다. 따라서 1949년 이후 중국 내에서의 학술 연구 동태는 알 수 없게 되었으며, 1950년대 중반부터 타이완(臺灣)의 학계가 정비되면서 타이완과의 학술교류가 시작되었다. 1959년에 본 학과 출신의 김학주(金學主) 교수가 한국 최초의 정식 유학생이 되면서 타이완대학 대학원에 유학하였고, 이어 이병한(李炳漢) 교수가 타이완사범대학교 대학원에, 그리고 김시준(金時俊) 교수가 타이완대학교에 유학하면서 교류의 길이 열렸다. 유학에서 귀국한 김학주 교수는 1965년에, 이병한 교수는 1967년에 본 학과의 전임으로 부임했다. 유학에서 돌아온 두 분이 부임하면서 중국문학 연구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타이완의 중국문학 연구방법이 도입되었고, 타이완 학계와의 교류가 시작되었다.
1967년에 새로 개설된 교양과정부에 김시준 교수가, 이듬해에는 최완식(崔完植) 교수가 전임으로 부임하면서 기초과목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었다.
1975년에 서울대학교 종합화에 의해 문리과대학이 인문대학과 사회대학, 자연과학대학으로 분리되고 교양과정부가 해체되면서 인문대학 중어중문학과로 통합되어 본 학과 교수의 수가 7명으로 확충되었다. 1975년 8월에 차상원 교수가 본 학과에서 최초로 정년퇴임하였다. 1981년에 장기근 교수는 성심여자대학으로 전출하였고 후임에 홍인표(洪寅杓) 교수가 부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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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978년부터 현재까지의 서운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연혁입니다.
중국의 개방 이후
1978년 말 중국이 개방정책을 발표하더니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록 비공식이었지만 양국의 교류가 시작되었고, 중국의 학술서적이 우리나라에 유입되면서 지난 30여 년간 중국에서 이루어졌던 학문성과를 일부나마 알 수 있게 되었다. 정치이념이 상이한 환경에서 발표된 학문성과여서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 느낌도 없지 않았으나, 우리와는 다른 학술연구의 세계가 있다는 것과 새로운 것에 대한 비판의 지혜라는 두 가지 귀중한 학문적 교훈을 함께 안겨주기도 했다.
1985년에는 대만에서 중국어학을 연구하고 귀국한 허성도(許成道) 교수가 부임하여 교수진이 확충되었고 연구 분야도 세분되어 대학원 학생들의 지도가 활성화되었다. 1986년 2월에 차주환 교수가 정년으로 퇴임하였다. 1987년 9월에 중국신화와 중국고전소설을 전공한 서경호(徐敬浩) 교수가 부임했고, 1989년 1월에는 시학(詩學) 전공의 이영주(李永朱) 교수가, 1993년 9월에는 사(詞)문학 전공의 류종목(柳種睦) 교수가 부임하여 본 학과의 교수진이 크게 보강되었으며 이에 따라 학문분야도 크게 확대되었다.
1986년 9월, 국립타이완대학에서 황치팡(黃啓方) 교수가 1년간 교환교수로 왔다. 이것은 우리 학과로는 최초의 외국대학과의 교수교환이 된다. 1993년에 허성도 교수가 1년간 베이징(北京)대학에 교환교수로 파견되었고, 또 1994년에는 이영주 교수가 베이징대학에 1년간 교환교수로 파견되어 학술교류와 새로운 학문방법을 연구, 토의하고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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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1992년부터 현재까지의 서운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연혁입니다.
한중수교 이후
1992년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중어중문학과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친 한 해였다. 그것은 실로 82년 만에 우리나라와 중국 간의 국교가 정식으로 수립 된 해였기 때문이다. 국교의 정상화로 중국어문학 연구도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1994년 9월에는 서울대학교와 학술교류협정을 맺은 얜비얜 (延邊)대학에서 안영희(安英姬) 교수가 교환교수로 중문과에 파견되어 왔으며, 1995년에는 같은 학교에서 최건(崔健) 교수가 파견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베이징대학의 스탠포드대학 등 다수의 국외 저명학자들이 방문연구를 하거나 학술강연을 하였고, 또 우리 학과의 여러 교수들이 중국을 비롯한 해외 각 대학 및 연구소의 초청 및 방문으로 학술활동을 하는 등 본격적인 학술교류가 지속되어 오고 있다.
이 기간 중에는 학과 교수 인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94년 3월에는 불행히도 홍인표 교수가 지병으로 작고하였고, 이듬해 3월에 중국 산문을 전공한 오수형(吳洙亨) 교수가 새로 부임하였다. 1996년 8월에 최완식 교수가 퇴임하고, 이듬해 3월에는 시가 전공의 송용준(宋龍準) 교수가 부임하였다. 1998년 8월에 이병한 교수가 퇴임하고 이듬해 2월에는 김학주 교수가 퇴임하였다. 1999년 9월에는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한 전형준(全炯俊) 교수와 중국어학(고대문법, 문헌학)을 전공한 이강재(李康齊) 교수가 부임하였다. 2001년 2월에는 김시준 교수가 퇴임하였다. 2003년 3월에는 중국 희곡을 전공한 이창숙(李昌淑) 교수가 부임하였고, 같은 해 9월에 중국학술사상을 전공한 김월회(金越會) 교수가 부임하였다. 2008년 9월에는 중국 고대문헌학을 전공한 영국 학자 OLIVIA MILBURN 교수가 부임하였고, 2010년 3월에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한 이정훈(李政勳) 교수가 부임하였다. 2014년 2월에 허성도 교수가 퇴임하였고 3월에는 중국어학(통사론, 유형론)을 전공한 박정구(朴正九) 교수가 부임하였다. 2017년 2월에 오수형 교수가 퇴임하였고 같은 해 9월에는 한중비교문학을 전공한 류준필(柳浚弼) 교수가 부임하였다. 2017년 8월에는 송용준 교수가 퇴임하였고 2018년 3월에는 중국어학(음성학, 음운학)을 전공한 이옥주(李玉珠) 교수가 부임하였다. 2018년 8월에는 류종목 교수가 퇴임하였고, 2019년 3월에는 중국현대문학을 전공한 김진공 교수가 부임하였다. 2020년 8월에는 이영주 교수가 퇴임하였고, 2021년 9월에는 중국고전시가를 전공한 강민호(姜旼昊) 교수가 부임하였다. 2022년 2월에는 전형준 교수가 퇴임하였고, OLIVIA MILBURN 교수가 사직하였으며, 2023년 9월에는 천진 교수가 부임하였다.